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칠곡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아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경북 어딘가에 있는 작은 도시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는 "왜 이제야 알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루 만에 정원, 목장, 100년 된 성당, 재래시장, 전망대를 모두 돌 수 있다는 게 처음에는 과장처럼 들렸는데, 실제로 직접 움직여보니 무리 없이 가능한 동선이었습니다.

가산수피아에서 배운 것, '무료'라는 단어의 함정
여행 전에 가산수피아가 최근 입장료를 무료로 전환했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86만 평 규모의 국내 최대 민간 정원이 무료라는 말에 살짝 의심부터 들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무료화 이후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었는지 주차 공간이 빠르게 찼습니다. 오전 일찍 도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산수피아는 조경학적 관점에서 보면 흔히 말하는 '테마 가든(Theme Garden)' 방식으로 설계된 곳입니다. 테마 가든이란 각각의 구역마다 독립적인 콘셉트와 식재 계획을 적용하여 방문자가 공간 이동만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경험하게 하는 조경 기법입니다. 실제로 숲길을 걷다 보면 구역마다 식생이 달라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정원 안쪽에 자리한 카페 '모아(Moa)'였습니다. '늦여름의 반짝임'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이 카페는 플랜트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공간 자체가 일종의 쇼룸 기능을 겸합니다. 진열된 식물과 오브제 대부분이 구매 가능하다고 했는데, 솔직히 가격표가 붙어 있지 않으면 전시 작품처럼 보일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통창 너머로 가득 들어오는 초록이 마치 살아있는 액자처럼 느껴졌고, 시그니처 커피는 기대보다 훨씬 균형 잡힌 맛이었습니다.
한 가지 짚어두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이라면 카페 내부의 식물 오브제가 판매용 상품이라는 점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보다 손이 닿는 위치에 소품들이 놓여 있어 어린아이와 함께라면 조금 긴장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가실성당, '드라마 촬영지'라는 수식어 너머
칠곡 양떼목장에서 건초 먹이 주기 체험을 마치고 차로 22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 가실성당입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결혼식 장면 촬영지로 알려지며 최근 입소문이 빠르게 퍼진 곳입니다. 솔직히 저는 드라마 팬이 아니라서 그냥 오래된 성당 하나 보러 간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한 건물 앞에서 잠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1923년에 건립된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Romanesque Architecture)으로 지어졌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란 11세기에서 12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두꺼운 석조 벽체, 반원형 아치, 육중한 탑이 특징입니다. 가실성당의 붉은 벽돌 외벽과 둥근 창문 구조가 정확히 그 특징을 따르고 있어, 국내에서 이런 건물을 만나게 되면 낯선 이질감과 묘한 친근함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경북 칠곡이라는 배경이 아니었다면 공주 중동성당이나 유럽의 어느 소도시 골목에 있다고 해도 믿을 뻔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드라마 촬영지는 세트장이나 단순한 배경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가실성당은 현재도 실제 미사가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살아있는 종교 공간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내부에는 기도를 드리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조용히 들어가 잠시 머물다 나왔는데, 인증샷 찍기에 급급하게 행동하는 다른 방문객들을 보면서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경북도청 문화관광 정보에 따르면 가실성당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되어 있으며, 매년 8월 중순부터 9월 초 사이에는 경내 배롱나무가 만개하여 붉은 꽃과 벽돌 외벽이 어우러진 풍경이 연출됩니다(출처: 경상북도 문화관광). 이 시기를 맞춰 방문한다면 사진 한 장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풍경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칠곡 양떼목장에 대해서도 짧게 정리하면, 입장료 7,000원에 건초 먹이 체험이 포함되어 있고, 깡통열차 패키지를 추가하면 약 15분간 목장 전체를 한 바퀴 도는 코스가 제공됩니다. 제 경험상 아이와 함께 온 가족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코스였습니다.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실용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운영 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입장 마감 오후 4시 30분
- 주차: 주차장으로 향하는 진입로가 좁은 산길이므로 초보 운전자는 주의 필요
- 폐장 전: 양 몰이 관람 가능 (오전 방문 시 놓칠 수 있음)
- 깡통열차 탑승 시 먹이를 들고 탑승 가능
평화 전망대, 포기하고 싶었지만 올라가길 잘했습니다
왜관시장에서 국밥 한 그릇(8,000원)으로 배를 채운 뒤 향한 마지막 목적지는 칠곡 평화 전망대였습니다. 솔직히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차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을 줄 알고 편하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는 체육센터에 주차한 뒤 어울림 센터 오른쪽 길을 따라 도보로 약 30분을 걸어야 합니다.
중간 지점쯤 올라갔을 때 진심으로 포기를 고민했습니다. 여름 한낮의 열기에 숨이 목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런데 전망대 관련 안내를 보면 이 구간은 등산로(Hiking Trail)가 아닌 임도(林道)로 분류됩니다. 임도란 산림 관리 및 작업을 위해 산속에 개설한 차도 수준의 넓은 흙길을 의미합니다. 가파른 등산로와 달리 경사가 완만하고 노면이 비교적 정비되어 있어 운동화 정도면 오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상의 전망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이동한 뒤 계단을 조금 더 오르는 구조입니다. 거기서 내려다본 낙동강과 칠곡 일대, 그리고 멀리 구미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 뷰(Panoramic View)는 올라오는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주었습니다. 파노라마 뷰란 시야가 막히지 않고 수평으로 넓게 트인 전방위 경관을 의미합니다. 기차가 강변을 따라 지나가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내려다보는 경험은 사진으로 담기 전에 그냥 한참 서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역관광 활성화 사업 자료에 따르면 칠곡군은 낙동강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호국 평화 관광 자원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평화 전망대는 그 핵심 거점 시설 중 하나로 운영되고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단순한 경치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올라오는 길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체력이 부담된다면 전망대 대신 낙동강 변의 평지 산책로나 호국평화기념관을 대안 코스로 고려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모든 여행자에게 30분 등산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칠곡은 '알 만한 사람만 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도 아니고 SNS에서 알고리즘을 타는 핫플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루를 꽉 채울 만한 것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배롱나무가 피는 8월 말에 다시 와서 가실성당을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도시 여행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