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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강원도 가는 길, 한 번쯤은 고속도로에서 멍하니 앞 차 번호판만 바라본 적 있으실 겁니다. 저도 딱 그랬습니다. 2주 연속으로 같은 길을 달렸는데, 신기하게 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평휴게소는 이미 만차였고, 사람은 넘쳐났습니다. 그 인파를 뚫고 반려견 목화와 함께 도착한 곳이 고성이었습니다. 속초보다 조용하고, 제주도 바다보다 가깝고, 그러면서도 둘 다 가진 곳이었습니다.

가평휴게소에서 고성 바다까지, 기대와 현실 사이
강원도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면 가평휴게소는 거의 필수 경유지처럼 느껴집니다. 일반적으로 주말 나들이객이 많으면 도로도 막힐 거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제 경험상 이건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로 정체 대신 휴게소 주차장이 먼저 포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를 세우기 전에 먼저 산책부터 했습니다. 목화도 마찬가지였고요.
날씨가 좋아서인지 강아지 동반 가족들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목화는 낯선 친구들이 주변에 있으면 절대 뛰지 않는 소심한 성격이라 나무 냄새 맡는 척 눈치를 봤습니다. 그래도 할 건 다 하더라고요. 산책 후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휴게소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진하고 맛있을 줄 몰랐거든요. 다음에 가면 두 개 살 생각입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커졌는데, 실제로 도착한 고성 바다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최근에 다녀온 바다 중 수질 투명도가 가장 높았습니다. 여기서 수질 투명도란 빛이 수중을 통과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투명도가 높을수록 바닥까지 맑게 보이는 바다를 의미합니다. 지난주 속초는 관광 성수기 특성상 해수욕객 밀집으로 물이 탁했고 바람도 강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고성은 달랐습니다. 파도 없이 잔잔하고,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반바지를 안 입고 온 게 후회될 정도로 물이 시원했고, 목화는 기어코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600년 한옥마을 숙소, 고즈넉함의 이면
고성 바다 인근에 600년 역사를 지닌 조선시대 전통 한옥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안에 숙소가 여러 채 운영되고 있는데, 저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으로 예약했습니다. 실제 옛 주민들이 살았던 전통 가옥을 그대로 활용한 방식이라 방 구조가 현대식 숙소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한옥 숙소는 '불편함 없는 전통 체험'으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이 부분은 조금 다르게 봐야 합니다. 실제로 지내보니 벌레 유입과 보안 시스템 면에서 현대식 숙소와 비교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특히 반려견과 함께 낯선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우, 외부 차단 기능이 취약하면 동물과 사람 모두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이 점은 방문 전에 미리 알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한옥마을 특유의 열섬 효과(heat island effect) 문제도 있었습니다. 열섬 효과란 도심이나 밀집된 건축물 주변에서 주변 지역보다 기온이 높게 형성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고즈넉한 마을이라도 돌담과 기와가 낮에 열을 흡수해 저녁에 복사열을 내뿜는 구조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화 유모차 자리에 아이스팩을 단단히 깔아두고, 저녁 식사 장소까지 논두렁 길을 따라 35분을 걸어갔습니다. 야간 기온이 내려간 덕분에 걷기는 좋았는데, 예약 시간에 맞추느라 결국 중간에 택시를 탔습니다. 올 때는 처음부터 택시를 타기로 했고, 그 선택이 맞았습니다.
가리비구이 2kg과 야외 테이블 저녁의 진실
이 식당은 고성 도착하자마자 대기를 걸어둔 곳이었습니다. 예약은 받지 않고 당일 현장 대기만 가능한 방식입니다. 바다 바로 앞에 카페와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오후가 되면 야외 테이블을 내어줍니다. 메뉴는 매일 조금씩 바뀝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맥주를 시켰습니다. 야외석에는 얼음을 기본으로 제공해 주시는데, 이날은 바람 예보가 있어 파라솔을 펴지 않았습니다. 그늘이 없어 아쉬웠지만, 야외 자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돌풍 한두 번쯤은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덥든지 말든지, 목화만은 아이스팩 위에 앉혀서 시원하게 유지했습니다.
가리비구이는 2kg을 주문했습니다. 야외 자리에서만 구이가 가능하고, 살아있는 것들이 그 자리에서 구워지는 방식입니다. 사장님이 직접 굽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처음 먹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었습니다. 달고 싱싱한 맛이었습니다. 주변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많이 시키는 걸 보고 잠깐 흔들렸는데, 불판을 따로 세팅해야 해서 번거로울 것 같아 참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마지막 음식으로는 라면 대신 물회를 선택했습니다. 물회란 신선한 해산물을 채 썬 채소와 함께 새콤달콤한 육수에 넣어 먹는 동해안 전통 방식의 음식입니다. 오징어회도 중간에 시켰는데, 이쪽 해역에서 당일 잡은 오징어답게 쫄깃함이 달랐습니다. 반려견 동반 여행에서 식당 선택이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분위기 문제인데, 이 식당은 야외석이 있고 고양이 간식까지 판매할 정도로 동물 친화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아침 바다 수영과 고성 3대 메밀국수집
다음 날 아침, 전날 봐두었던 바다로 다시 갔습니다. 관광객보다는 이 지역을 잘 아는 분들이 주로 찾는 곳처럼 느껴졌습니다. 백사장의 해변 퇴적물 입도(grain size)가 고왔고, 해수 탁도 역시 낮아 발 아래까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해수 탁도란 물속에 부유하는 입자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로, 탁도가 낮을수록 물이 맑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침이라 더 조용했고, 모래사장도 전날보다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목화는 튜브를 타고 바다를 정복했습니다. 수영 천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저도 편의점에서 여벌 옷을 급하게 사 입고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일반적으로 반려견 물놀이 시에는 반려견 전용 구명조끼(pet life jacket) 착용이 권고됩니다. 반려견 전용 구명조끼란 물에서의 부력을 보조하고 핸들이 달려 있어 보호자가 빠르게 구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비를 말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반려동물 안전 가이드라인에서도 수상 활동 시 안전 장비 착용을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목화가 수영에 익숙하다 해도 다음엔 꼭 챙길 생각입니다.
물놀이 후에는 고성 3대 메밀국수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야외석은 반려견 동반이 가능한 곳으로, 강아지가 없어도 야외에서 식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메밀면이 얇고 부드럽고, 동치미 국물을 부어 비벼 먹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 먹을 때는 평양냉면처럼 간이 세지 않아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테이블에 비치된 양념 소스를 추가하면 맛이 확 달라집니다. 저는 다 먹고 나서야 소스를 발견했습니다.
수육은 꼭 시키시길 권합니다. 투박하게 썰려 나왔는데 오히려 그 투박함이 맛을 더해줬습니다. 명태회무침과 함께 먹으면 국수 한 그릇이 훌쩍 비워집니다. 국수와 수육에 집중하다 보면 메밀의 저항전분(resistant starch) 함량이 높다는 것도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저항전분이란 소화 효소에 의해 분해되지 않고 대장까지 내려가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의 일종으로, 혈당 급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식품영양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메밀은 일반 밀에 비해 식이섬유 함량이 약 2배 이상 높습니다(출처: 한국식품영양과학회).
식사 후에는 유명한 찹쌀떡 가게에 들렀습니다. 오픈 40분 전에 도착했고, 10분 전에 번호표를 나눠줬습니다. 한 사람당 2팩 한도입니다. 당일 제조, 당일 판매 방식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 줄이 길어집니다. 방금 만든 찹쌀떡은 따뜻하고 쭉 늘어나는 쫀득함이 인상적이었고, 팥 소는 달지 않아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되는 맛이었습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못 사서 재도전한 것이었는데, 기다린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이번 고성 여행은 단순히 예쁜 바다를 보러 간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속초처럼 잘 알려진 관광지 대신 조용한 해변을 선택한 것, 전통 한옥마을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며 묵은 것, 식당 하나를 위해 논두렁 길을 걸은 것. 그 모든 선택이 쌓여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됐습니다. 고성을 한 번도 안 간 분들께는 강력히 추천드리고, 한 번이라도 가본 분들께는 아침 바다만큼은 꼭 다시 가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