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대전에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열에 여덟은 "성심당은 다녀왔어?"라고 묻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성심당 말고 대전에 뭐가 있는지, 솔직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빵 택시를 타고 대전 로컬 베이커리 세 곳을 직접 돌아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빵 택시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빵 택시란 대전의 숨은 베이커리 명소를 택시 기사님이 직접 안내하며 데려다주는 로컬 투어 서비스입니다. 쉽게 말해, 맛집 큐레이션과 이동 수단을 하나로 묶은 형태입니다. 일본 가가와현의 우동 택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기획된 것으로, 시간당 3만 원이라는 요금에 코스 설명과 이동이 모두 포함됩니다.
제가 직접 타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이동만 해주는 줄 알았는데, 기사님이 각 빵집의 시그니처 메뉴를 미리 파악해 두고 추천까지 해주시니까 처음 가는 곳인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웨이팅 걱정도 없고, 어디를 가야 할지 검색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빵 택시 코스에서 들른 곳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차: 미미제과 — 두쫜쿠, 에그타르트, 소금빵
- 2차: 파이가든 — 크림소쿠니, 크루아상
- 3차: 파티세리 소신 — 쁘띠갸또, 구운 피스타치오 디저트, 금돌이빵
대전시가 관광 자원으로서 로컬 베이커리 육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런 투어가 생겨난 배경 중 하나로 보입니다. 실제로 대전관광공사에 따르면 대전은 최근 '빵지순례' 성지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출처: 대전관광공사).
성심당 그늘 밖에도 맛있는 빵이 있다는 것
솔직히 저는 대전 빵집이라면 다 성심당 아류 아니겠냐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각을 가진 분들도 꽤 있을 텐데, 제 경험상 이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방문한 미미제과에서는 두바이 쫀득 쿠키, 즉 두쫜쿠를 먹었습니다. 두쫜쿠란 카다이프(Kadayıf)라는 터키식 실 모양 밀가루 반죽에 피스타치오 크림을 채운 중동 스타일 디저트를 쿠키 형태로 재해석한 메뉴입니다. 여기서 카다이프란 밀가루를 가늘게 뽑아 건조시킨 것으로, 구우면 바삭하면서도 속은 쫀득한 독특한 식감을 냅니다. 빠베 두쫜쿠의 경우 카다이프 안에 빠베 초콜릿이 통째로 들어가 있어서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진한 카카오 향이 퍼집니다. 가격은 여섯 개에 3만 2천 원, 제 기준엔 이 퀄리티에 이 가격이면 진짜 납득이 됐습니다.
두 번째로 간 파이가든에서는 크림소쿠니를 경험했습니다. 크림소쿠니란 바닐라빈 커스터드 크림을 파이 껍질 위에 얹은 뒤 윗면을 가볍게 구워 낸 디저트로, 부수는 순간 크림이 흘러내리는 비주얼이 특징입니다. 여기서 바닐라빈 커스터드란 바닐라 꼬투리에서 직접 추출한 씨앗을 넣어 끓인 크림으로, 바닐라 에센스와는 향의 깊이가 확연히 다릅니다. 크루아상에 찍어 먹었을 때의 조합은 제가 직접 먹어봤는데, 단순히 달콤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약간 일본 편의점 크림 브륄레 아이스크림 맛이 빵에서 난다고 표현하면 감이 올 것 같습니다.
세 번째 파티세리 소신에서는 쁘띠갸또를 맛봤습니다. 쁘띠갸또(Petit Gâteau)란 프랑스어로 '작은 케이크'를 뜻하는 프랑스식 개인용 단품 케이크를 말합니다. 소신에서는 제철 식재료에 따라 구성을 바꾸는 시즌형 쁘띠갸또를 운영하고 있는데, 제가 먹은 구운 피스타치오 버전은 말차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고, 안에 귤 콩포트(Compote, 과일을 설탕 시럽에 조린 것)가 들어 있어서 여러 빵을 먹은 후반부에도 입안이 정리됐습니다. 성심당 출신 파티시에들이 독립해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는데, 경쟁보다 상생을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대전이 진짜 빵의 도시가 되려면
대전=성심당이라는 등식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성심당은 1956년 창업 이래 대전 경제와 관광에 기여해 온 상징적 브랜드이고, 대전 시민들도 외부 손님에게 선물할 때는 자연스럽게 성심당을 선택합니다. 2023년 기준 성심당의 연매출은 약 5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일보).
그런데 성심당만으로 도시의 음식 정체성을 다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번 투어를 통해 느낀 것은, 대전에는 로컬 파티시에들이 각자의 감각으로 빚어낸 빵들이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것들을 엮어서 보여줄 연결고리가 부족했다는 것이고, 빵 택시는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빵 택시가 단순한 재미 이벤트로 끝나지 않으려면, 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과 홍보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그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직접 타보고 느낀 건, 이미 서비스 자체의 완성도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기사님이 직접 준비해 주신 라면 코스까지 포함하면, 이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식문화 경험이었습니다.
대전에 가실 계획이 있다면, 성심당 줄 서기 전에 빵 택시 예약을 먼저 해보시길 권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맛이 때로는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