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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여름, 저도 처음엔 그냥 동해안 드라이브나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영덕 어느 방파제 앞에서 차를 세우고 발을 들인 순간, 이게 한국 바다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물이 맑았습니다. 산불 피해 이후 오랫동안 통제됐던 곳이라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 덕분에 해양생태계가 고스란히 살아있었던 겁니다.

    석동방파제, 갖춰진 환경 속에서 즐기는 바다

    혹시 방파제 안쪽과 바깥쪽 바다가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다는 걸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석동방파제는 양파제(兩波堤)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양파제란 파도를 양쪽에서 막아주는 방파제 두 개가 입구를 마주 보듯 배치된 형태를 말하는데, 이 덕분에 내부 수면이 거의 호수처럼 잔잔합니다. 파고(波高), 즉 파도의 높이가 낮아 물속 시야 확보가 훨씬 수월했고, 제가 직접 들어가 보니 하얀 거품이 거의 없어서 수중 시야가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습니다.

    이 방파제 인근은 2년 가까이 차량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었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인근 여섯 개 군으로 번지면서 이 마을도 큰 피해를 입었고, 산사태 낙석으로 인한 2차 피해 우려 때문에 차량 진입은 아직도 제한적입니다.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오히려 그게 이 바다를 지켜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실용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차량은 진입로 초입 주차 공간에 세워두고 도보로 이동해야 합니다.
    • 방파제 인근 화장실은 규모가 꽤 크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 방파제 쪽 주차 공간도 별도로 존재하나, 차량 통제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물속으로 내려가는 경사가 완만하여 아이를 동반한 가족도 이용하기 수월합니다.

    현지 어르신들께 여쭤보니 산불이 났을 당시 배를 타고 피난을 가셨다고 하셨습니다. 전쟁통 같았다는 그 말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그 피해의 흔적이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데, 나무 밑동만 남은 언덕 위로 복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도 새로 짓는 중이었습니다. 산불 피해가 없었다면 이미 다 지어졌을 것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축산항 인근 협곡, 날것의 바다가 주는 충격

    석동방파제에서 차로 조금 이동하면 나오는 축산항 인근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혹시 조간대(潮間帶)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조간대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해안 구간을 뜻하는데, 이 협곡 포인트는 전형적인 조간대 암반 지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파도가 세고 너울(swell)이 있어 물놀이에는 주의가 필요하지만, 바로 그 덕분에 해초류와 뿔소라, 성게 같은 생물들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울이란 먼 바다에서 발생한 파도가 해안에 도달하며 만들어내는 길고 완만한 파동을 말하는데, 보기엔 잔잔해 보여도 몸을 순식간에 쓸어갈 수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협곡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빛이 쏟아지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암벽 사이로 햇살이 비스듬히 내리꽂히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데, 카메라로 담아도 이게 제대로 나올까 싶을 만큼 비현실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협곡 지형은 알고 찾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 고요함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물놀이 후에는 바위 그늘에 자리를 잡고 버너를 꺼냈습니다. 현지에서 구한 뿔소라와 성게를 넣어 끓인 해물 라면이었는데, 라면 국물에서 진한 지방 맛이 확 올라왔습니다.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재료가 들어가 그런지, 시판 라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맛이 났습니다. 이런 소소한 낭만은 분명 좋지만, 해산물 무분별 채취는 해양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로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르면 일정 크기 이하의 수산물 채취는 금지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오랫동안 통제되며 회복된 이 바다 생태계가 방문객 증가로 다시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솔직히 걱정됩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연안 생태계의 자연 회복에는 평균 5년 이상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해양수산부). 그 회복의 시간을 방문객 한 명 한 명이 인식하고, 쓰레기 한 조각도 남기지 않는 성숙한 여행 문화가 선행되어야 이 바다가 오래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영덕 석동방파제와 축산항 인근, 두 곳 모두 저는 추천하고 싶습니다. 단, 어느 쪽이 더 맞는지는 취향에 달려 있습니다. 잔잔한 바다에서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석동방파제가 맞고, 조금 더 거친 자연의 질감을 원한다면 축산항 협곡 쪽이 훨씬 강렬합니다.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도보 이동이 필요한 불편함은 있지만, 그 불편함이 이 바다를 지금껏 지켜왔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피해 복구가 한창인 지역에 발길을 보태는 것 자체가 지역 경제에 작은 힘이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JbsMd28f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