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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저는 영덕을 '대게의 도시'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붉은 대게 다리가 접시 위에 올라온 사진, 강구항 풍경,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직접 영덕 북부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나니 제가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이 지역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숲과 역사와 바다가 이 작은 지역 안에 이렇게 촘촘히 들어차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 기대 이상이었던 이유

    일반적으로 메타세쿼이아 숲 하면 전남 담양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경북 영덕, 그것도 동해안 바로 옆에 이 정도 규모의 숲이 있다는 건 제 경험상 예상 밖의 발견이었습니다.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의 전체 규모는 약 20만 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20만 평'이란 수치가 피부에 잘 안 닿을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여의도 면적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넓이입니다. 이 광활한 숲을 한 개인이 20년 이상 직접 조성했다는 사실이 걷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숲 안으로 들어서면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glyptostroboides)가 하늘을 가릴 듯 곧게 뻗어 있습니다. 메타세쿼이아는 낙우송과에 속하는 낙엽침엽수로, 성장 속도가 빠르고 줄기가 직립하는 특성이 있어 조림수(造林樹)로 많이 활용됩니다. 조림수란 경제적 목적이나 환경 조성을 위해 사람이 계획적으로 심어 가꾸는 나무를 말합니다. 이 숲의 나무들은 대부분 20m 이상, 키가 큰 것은 30m에 가까운 것도 있었습니다.

    산책로 중심부 길이는 약 420m입니다.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숲의 밀도와 높이 때문에 체감 시간은 훨씬 깁니다. 나뭇잎 사이를 걸러 내려오는 아침 햇빛의 질감이 달랐습니다. 직사광선이 아니라 산란광(散亂光) 형태로 들어오는데, 산란광이란 빛이 나뭇잎이나 입자에 부딪혀 여러 방향으로 퍼진 빛을 말합니다. 그 덕분에 같은 오전이라도 그림자가 부드럽고 공간 전체가 고요하게 빛납니다.

    숲 입구에서 200m 정도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오는데, 거기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이 여행에서 첫 번째 충격이었습니다. 동해 바다 옆에 이런 너른 들판이 펼쳐질 거라고는 정말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태백산맥이 동해안에 가깝게 붙어 있어 평지가 적은 동해안의 지형 특성상 이 정도 규모의 충적평야(沖積平野)는 흔치 않습니다. 충적평야란 강이 상류에서 운반해 온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평탄한 지형을 말합니다. 오른쪽으로는 상대산이 제주도 산방산처럼 홀로 솟아 있고, 그 너머로 동해가 희미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주차비도 입장료도 없습니다. 이 점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한 개인의 20년 노동이 공공 자산처럼 열려 있다는 의미라서, 고맙다는 감정과 동시에 걱정도 들었습니다. SNS와 미디어를 타고 방문객이 급증할 경우,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관리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유지 기반 생태 자원의 경우, 지자체가 생태계 보전 협약이나 관리 예산 지원 같은 공적 개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영해 장터거리와 괴시리, 알고 보니 훨씬 두꺼운 역사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차로 5분이면 영해 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닿습니다. 일반적으로 '근대역사거리'라고 하면 관광화된 카페 골목 정도를 떠올리기 쉬운데, 여기는 결이 달랐습니다. 겉은 조용한 읍내 골목이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이 땅이 품고 있는 사건들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이 거리에 남아 있는 주요 문화유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 영해 금융조합: 1935년 건립. 일제강점기 농업·산업 경제를 관할하던 기관으로, 해방 이후 농협은행 지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현재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구 대구 매일신문 지국: 현재 보수 공사 중으로 내부 관람 불가 상태입니다.
    • 천주교 영해 공소: 공소(公所)란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천주교 신앙 공동체로, 정기적으로 신부가 방문해 미사를 집전하는 형태입니다. 방문 당시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영해 금융조합 건물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이란 근현대 건축물이나 시설 중 보존 가치가 있는 것을 문화재청이 등록하는 제도로, 지정문화재보다 규제가 유연해 현재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출처: 문화재청).

    역사적으로도 이 거리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1871년에는 이필제와 최시형을 중심으로 한 영해 동학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보다 23년 앞선 일입니다. 1896년에는 평민 의병장 신돌석 장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의병을 일으켰고, 1919년 3월 18일에는 3천 명이 이 거리에 모였습니다. 한강 이남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집결한 3·1운동 현장이었고, 그만큼 피해도 컸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역사적 밀도에 비해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안내 콘텐츠가 부족했습니다. 주요 거점 일부가 보수 공사 중이거나 문이 닫혀 있어,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오면 그냥 조용한 읍내 골목으로만 보고 지나칠 수 있습니다. QR 코드 기반 디지털 해설 시스템 도입 같은 콘텐츠 연계 방안이 필요해 보입니다.

    괴시리 전통마을은 2021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전국에서 8번째로 지정된 국가민속문화유산 마을로, 30채 이상의 전통 가옥이 실제로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유산청). 고려 말 성리학을 전파한 학자 목은 이색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기념관에서 문집과 영정을 본 뒤 생가지 뒤쪽으로 올라가면 '관어대 소부'라는 글귀가 새겨진 암벽이 나옵니다. 관어대(觀魚臺)란 이색이 동해를 내려다보며 바위 아래 유영하는 물고기까지 보인다 하여 이름 붙인 정자로, 고택 안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르면 딱 좋은 코스입니다.

    대진항 고래해상전망대는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전망대 전체가 고래 형상으로 설계되어 있고, 관어대에서 이 바다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다면 전망대에서는 바다 위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만, 동해안 특유의 너울성 파도가 발생할 경우 해상 구조물 접근은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너울성 파도란 먼바다의 폭풍이나 기압 변화로 생성된 긴 파장의 파도가 연안으로 전달되는 현상으로, 겉으로는 잠잠해 보여도 갑자기 큰 파도가 밀려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상 상황에 따른 명확한 진입 통제 기준이 현장에 안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마치고 나서 드는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영덕 북부는 아직 덜 알려진 만큼 지금이 가장 좋은 방문 시점일 수 있습니다. 미디어를 타고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에, 숲도 거리도 마을도 지금의 밀도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해 장터거리와 괴시리 전통마을, 관어대까지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 일정으로도 빠듯하니, 당일치기보다 1박 2일 여정을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ZkUcUFbyEQ